운선당 혜운 스님
운선당 혜운 스님


그들을 내 몸과 바꾸어 비교해 보아라.
산 생명을 죽여서는 안 된다.
또 남을 시켜 죽이게 해서도 안 된다. 
- 숫타니파타 -
 

 

지긋지긋하게 피해의 상처를 남긴 때늦은 가을장마와 태풍이 이젠 멈추고,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듯이 기온차가 많이 납니다.
마른 잎들이 떨어지기 시작을 하고 이제 멀지 않아 노랗고 붉은 색으로 옷을 갈아입기 시작할 것입니다.
환절기에 건강에 유념하시고 특히 연세 있으신 분들은 특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10월이 되면 방생들을 많이 하는데 방생의 시작과 그 유래를 알고 행하시길 빕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사는 것을 원하지 죽는 것을 좋아하진 않습니다.
그깟 죽음 따위는 겁내지 않는다고 큰소리치던 사람도 막상 죽음 앞에 직면하게 되면 두려움에 떨고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도살장에 끌려간 소 역시도 한 결 같이 큰 눈을 번뜩이고 뒷걸음질 치며 몸부림치는 것이, 죽기 싫어하는 것은 사람이나 축생들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생명체는 똑같은 불성(佛性)을 갖고 있습니다.
불성이란 모든 생명체의 근원이며, 바로 생명체의 주인공입니다.
비록 겉모습은 새와 물고기가 다르고, 사람과 짐승 모두가 다르지만,
그 속의 주인공인 불성은 그 본질에 있어서는 털끝만큼도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일찍이 보리수 아래서 성도하신 후에 모든 중생들을 자세히 관찰해 보니, 놀랍게도 모든 중생들이 똑같이 지혜의 성품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화엄경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널리 일체 중생을 살펴보니 모두가 여래와 똑같은 지혜와 덕상을 갖추고 있더라."
그런데 왜 똑같은 불성을 갖고 있은데 사람도 되고 개도 되고 물고기도 되는 것입니까?
그것은 똑같은 불성을 갖고 있으면서 각각의 차별상을 이루는 까닭은 각자 개인들이 지은 업이 모두 제각각 다르기 때문입니다.
개가 될 짓만 하다가 죽으면 다음 생에는 개로 태어나게 되고, 소가 될 짓만 하다가 죽으면 다음 생에는 한 마리의 소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또는 하늘나라에 태어나기도 하고, 지옥에 떨어지기도 하고, 축생이나 다시 사람으로 환생하는 것도 역시 모두가 자기의 지은 바 업에 의한 것입니다.
중생들이 똑같은 불성을 생명의 근원으로 하면서도 갖가지 모습으로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이처럼 자기가 지은 바 업에 의한 것으로 이것을 자작자수(自作自受)라고 합니다.
이처럼 자작자수의 과보로 태어나는 중생의 종류에는 육도(六道)가 있는데
천상, 인간,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라고 하는 여섯 갈래의 중생들입니다.
이 가운데 축생이란 일반적으로 어리석음을 상징하는 중생으로, 죽은 후 영혼이 다음 세상으로 갈 때, 어리석은 생각을 하여 새둥지가 대궐로 보이고 물속이 황금 연못으로 보여서, 새가 되기도 하고 물고기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윤회를 하기 때문에 하찮은 짐승이라고 업신여기는 동물들도 어쩌면 전생에 우리의 부모나 형제였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들은 짐승이나 물고기라고 해서 함부로 생명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 생을 거쳐 살아오면서 우리는 여러 생명들과 부모자식과 형제자매, 부부의 연을 맺고 살아왔으므로 알고 보면 어느 생명이든지 간에 인과관계가 전혀 없는 무연중생은 하나도 없는 것이기에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남들이 하니까 나도 덩달아 한다거나, 아무 뜻도 모르면서 그저 좋다고들 하니까 하는 방생은 참다운 것이 아닙니다.
아주 먼 과거세에 유수라는 장자의 의사가 있었는데 그는 의술이 뛰어날 뿐 아니라, 마음이 자비로워서 병고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을 구하였습니다.
어느 날 깊은 산 속을 지나가다가 독수리, 승냥이와 이리 등 육식동물들이 모두 한 곳을 향하여 달려가는 것을 보고 유수장자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그 곳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그 곳에는 작은 연못이 하나 있었는데 그 연못은 물이 줄어들어 이제 바닥이 드러나려는 찰나여서 독수리, 승냥이들이 물고기들을 잡아먹기 위하여 모여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연못 속에 물고기들이 몸을 뒤틀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본 유수장자 의사는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듯한, 물고기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유수는 그 물고기들을 살리려고 주변을 살폈으나 주변에는 적당한 물줄기가 없었습니다.
마침 멀리 큰 강이 있었으나 사람들이 물고기를 잡기위해 물줄기를 다른 곳으로 돌려 물이 아래로 내려가지 못하게 해 놓았기 때문에 그것을 고쳐서 마른 연못에 물을 대기가 불가능했습니다.
그러자 의사는 황급히 본국으로 돌아가서 왕에게 자초지종을 아뢰었습니다.
"제가 백성들의 질병을 고쳐주어 모두 편안케 한 후에 길을 가다가 한 연못에 이르렀는데   그 못에 물이 마르려고 하여 물고기가 햇빛에 쏘여 머지않은 장래에 죽을 것 같았습니다.
 원컨대 왕이시여! 자비를 베푸셔서 저에게 큰 코끼리 20마리만 주시면 제가 병든 사람의   목숨을 건지듯, 물을 길어다가 물고기들의 목숨을 건지도록 하게 하여 주옵소서."
다행이 왕은 평소에 유수장자의 공로를 잘 알고 있던 터라 순순히 허락을 하였습니다.
유수는 큰 코끼리 20마리와 가죽주머니를 많이 빌려 강으로 가서 물을 길어 작은 연못에 쏟아 부으니 금방 연못은 물이 가득하여 물고기들이 숨을 쉬었습니다.
그런데 물고기들이 이상하게도 유수를 따라서 물가를 빙빙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유수장자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물고기들이 그 동안 물이 줄어서 물속에 먹을 것이 없어 배가 고파 그러는 줄을 알아차리고 코끼리를 보내 물고기가 먹을 음식을 가져와 넣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유수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일단 음식을 보시하여 물고기의 생명을 구했으니, 이제 물고기들이 목숨을 마친 후에는 좋은 세상에 태어나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나무보승여래, 나무보승여래…
 이 부처님은 옛적 보살행을 닦을 때 이런 서원을 세웠노라. 시방세계 모든 중생들이 목숨을 마치고 죽을 때에 나의 이름을 듣는 이들은 삼십삼천에    태어날 지어다." 하고 말하고 나서 12인연법을 물고기들을 위해 설하고 난 후에 흡족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훗날 그 연못의 물고기들은 똑같이 목숨을 마치고 삼십삼천에 태어났다고 합니다.
삼십삼천은 도리천이라고 하는 살기 좋은 하늘나라의 하나입니다.
이 이야기는 대승경전의 하나인 금광명최승왕경(金光明最勝王經)에 나오는 설화입니다.
부처님은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하시고 다시 말씀하시기를 그 유수장자 의사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아득한 전생에 석가모니부처님 자신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부처님께서 과거세에 물고기들을 위하여 마치 의사가 병든 사람을 구제하듯 물고기를 구제하신 것입니다.
우리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행을 본받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불자입니다. 그러므로 방생이라 함은 부처님께서 전생에서 하신 거룩한 행을 본받아서 우리들이 지금 행하는 것이므로 참으로 뜻 깊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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