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속도로 변하는 세상이다. 바쁜 일상은 앞만 보고 달려가게 만들고, 마음의 여유마저 앗아간다. 그럼에도 작가는 잠시 멈춰설 줄 알아야 한다. 삶의 미세한 틈을 관찰해야만 좋은 작품이 나온다.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페터 한트케(77)의 ‘시 없는 삶’에는 느림의 미학이 느껴진다. 다양한 장르의 문학 실험으로 숱한 화제를 뿌렸던 한트케는 자유로운 시상을 마음껏 펼쳤다.
편집자 울라 베르케비츠의 이야기에 따르면, 이 시집은 1960년 후반부터 1986년까지 쓴 시들을 한트케가 다시 배치한 모음집이다.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1960년대 기성 문단을 비판하며 등장한 20대의 작업부터 우리에게 잘 알려진 ‘베를린 천사의 시’ 시나리오 작업을 한 40대 초반에 이르는 20여년간의 여정을 만나볼 수 있다.
한트케는 이혼으로 딸 아미나를 홀로 키우게 되며 어머니의 죽음까지 겪는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으로 살기 위해 노력한다. 아름다운 삶의 발자취를 재발견하길 바란다. 1972년 쓴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와 ‘소망 없는 불행’이 이러한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알려졌다. 이 시집의 후반부인 ‘산책의 끝’과 ‘지속의 시’, ‘시 없는 삶’은 이와 같은 맥락에 맞닿아 있다.
세상은 불공평할지라도 누구에게나 시간은 공평하다. 모든 인간은 늙고 병들며 결국 죽는다. 그것을 거부하거나 회피하려고 하면 힘들어질 뿐이다.
나쁜 일도 지나가기 마련이고 좋은 일도 붙잡을 수 없다. 한트케는 삶이 덧없는 것 같지만 순간순간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강조한다.
‘올해 가을 시간은 나 없이 흘러갔네/ 생은 조용히 정지해 있고, 그 시절/ 우울을 이기려 타자를 배우던 때처럼/ 저녁이면 창문 없는 대기실에서 수업을 기다렸지/ 네온등은 물밀듯 넘쳐들었고/ 타자시간이 끝나면 비닐커버는 다시 타자기 위에 덮였네/ 그렇게 갔다가 그렇게 돌아왔고 나는/ 자신에 관해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을 듯 했지/ 자신에 몰두했고 그런 사실마저 자각했지만/ 절망이 아니라 오로지 만족스러웠네/ 자신에 관한 아무런 느낌도 없이/ 타인에 대한 느낌도 없이/ 걸었고, 망설이며 배회하다/ 자주 걸음걸이와 방향을 바꾸었지(‘시 없는 삶’ 중)
조원규 옮김, 읻다(ITTA), 320쪽,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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