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에서도 대표적인 오지인 봉화군 법전면 눌산리는 야산과 낮은 구릉지로 형성된 중산간지이며, 해발 400m~530m로 옛날에는 눌뫼, 눌미, 눌산이라고 불리어 오고 있는데, 여기에 과거 정수암이라는 암자가 있었다고 하여 부처님의 땅이라는 것을 반증해 주고 있다.이곳 눌산리에 자리 잡은 혜운사(주지 혜운스님)에 들렀다.
아무도 없을 것 같은 산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끝자락에 산중이지만 혜운사라는 현판이 붙어있어 이곳이 사찰이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혜운스님은 불교대학을 운영 수행 정진하다가 이리 저리 치이고 속고 속는 세상이 싫어 조용히 살고 싶어서 산골로 들어왔다고 했다.
그동안 수많은 경전을 강의할 수 있는 강해서를 저술하여 강의를 하였다고 했다.그러다 이제는 좀 조용히 살고 싶다는 마음에 산을 찾게 되었고 그곳이 봉화 법전면 눌산리라고 했다. 바람소리에 나뭇잎 떨리는 소리, 산새들의 청량한 노래 소리, 그리고 물 떨어지는 소리와 개구리의 울음이 정적을 깨뜨리지만 내가 보기에는 심심하기 짝이 없는 곳이다.우리 스님 심심하지 않으세요? 괜한 질문을 던져본다.
의외로 스님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혼자 모든 것을 다하려니 산속에서도 바빠요.
이러려고 산에 들어온 게 아닌데, 우째 더 바쁜 것 같아요.” 하면서 웃어넘긴다.

혜운스님 작 - 12폭 반야심경

혜운스님 작 - 12폭 반야심경

혜운스님은 서각을 하고 있었다.
거실과 작은 방, 2층에는 스님의 서각작품이 꽉차있었는데 알 듯 모를 듯 아무튼 보기는 좋아 보인다.
그런데 무슨 내용인지 통 모르겠다.  한자가 너무 많아서……
한글 작품도 간혹 있었지만.
스님! 왜 서각을 하십니까?“서각은 또 다른 수행의 한 방편이지요.
 불경을 그 의미에 맞는 서체로 먼저 쓰고 서각을 합니다.”
아하! 그때서야 스님의 서각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혜운스님 작 - 3무(無)

중앙 무는 태양으로 위에서 아래로 내리쬐고, 좌측은 물방울, 우측은 불의 형상으로 인간의 삶이 고되면서 물거품처럼 스러지고 불과 같이 빠른 시간에 지나감을 표현하였다.
독특하고 화려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서각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서각 작가 혜운스님은 “서각은 글귀를 구상하고 그 글의 의미에 맞게 서체를 생각한 후에 글을 쓰고 다시 컴퓨터 작업으로 서각할 수 있는 서체로 모양을 바꾸고 난 후 글을 조각하고 그 다음에 채색을 하는 종합예술”이라고 말한다.스님의 서각은 스님의 몸을 마치 자신의 것이 아닌 냥 내버리는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이며, 내면의 내재한 법력의 표출로써 때로는 태풍이 휘몰아치듯 강렬하게, 때로는 잔잔한 호수 위의 일엽처럼 깊이가 있으면서 모든 것을 음각으로 파내지만 그 깊이가 나무 판을 뚫을 정도로 깊게 파내어 군더더기가 없다.

혜운스님 작 - 겨울 산사의 풍경
 스님의 마음인 듯하다.
오늘도 혜운 스님은 나무를 파내고 있다.
마치 자신의 가슴을 후벼 파 듯 나무속을 파내고 있는 것이다.서각에 부처님의 말씀을 새겨 세상에 전하며 수행에 매진하고 있는 것이다. ‘일획일각(一劃一刻)’,
그 옛날 선조들이 팔만대장경을 각인 했듯이 수행으로 체득한 삶의 지혜를 서각에 고스란히 옮기는 작업에 몰두 하는 이유를 이제는 알겠다.

혜운스님 작  4폭 병풍 - 법화경 사구게                       

혜운스님 작 - 공(空)

해가 넘어가고 깊은 밤이 찾아오면 산은 소리 없이 암자를 안아준다.
그 속에 혜운스님의 서각작품 나무 냄새와 먹 냄새가 어우러져 불빛에 비친다.
산 짐승들의 소리는 덤이다.


 

 

혜운스님이 기거하는 거실에서 바라 본
일출의 모습

스님이 계신 요사체에서 창을 통해 매일 아침 연화장 같은 일출이 펼쳐진다.
이런 장관 속에서 시작하는 스님의 서각작품!
산 속에 살면서 산을 닮아가는 혜운스님의 서각 작품을 도심에서 볼 날은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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