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한정규
문학평론가 한정규

 

같은 말이라도 어와 아가 다르듯 영업집에서 주인이나 종업원이 손님에게 인사를 건네는 말로 보통은 안녕히 가세요, 조금 다른 인사말로는 또 오세요. 하기도 하며 또 봐요 그렇게 한다.
안녕히 가세요, 를 제외한 두 경우 모두 자기 업소를 또 찾아 달라는 말이지만 말속에 담긴 의미에는 큰 차이가 있다.
안녕히 가세요? 는 다분히 상업적인 반면 또 봐요? 는 상업적이기 보다는 정情적이다. 또 오세요? 는 영업장에서 보자는 말로 제한적인 반면 또 봐요? 는 이곳 장소에 구애되지 않고 언제 어디서고 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한다.
그렇듯 듣는 사람이 느끼는 인간미가 다르다. 인간이 지닌 최대의 아름다움은 정情이다. 내 집에 손님으로 잠시 들렸다가는 손님에게 정이 담긴 인사를 주고받는 것 나쁘지 않다.
각박한 세상에 말 한마디라도 서로 따뜻하게 주고받는다면 그 또한 보다 밝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싶다.
‘우리의 기쁨은 행위에 있다. 최선의 행위는 최고의 행복이다.’라고 독일의 시인 이코비가 말했다. 이코비 말마따나 한마디 말에도 기쁨이 있으며 행복이 있다. 그래서 기왕이면 또 오세요. 보다는 또 봐요, 라는 말이 좋지 않을까 싶다. 인간은 간사스러운 동물이라서 서로 주고받은 말 한마디에도 더한 행복을 느낀다.
우리 속담에 말로 천량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다. 말이 그 만큼 중요함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 남녀노소, 배우고 못 배우고, 지위가 높고 낮고, 할 것 없이 말 함부로 한다. 특히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는 사람들 언행 저질스럽게 한다. 저질스럽게 하지 말고 지성인답게 지도자답게 말 순화하면 안 되는가 자성이 필요하다. 자기 생각과 다르더라도 자세히 살펴 정직하게 그리고 오순도순 논리적으로 의견을 나누며 최선의 노력을 보일 수 없는가? 그래서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선택하는 모습을 보여 주면 안 되나?
영업소에서 같은 인사라도 또 오세요? 보다는 또 봐요. 라 하듯 지나친 다툼 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듣고 선택 할 수 있지 않은가. 요즘 사람들 언행을 보면 속된 말로 모두가 정상이 아닌 것 같아 안타깝다.
책무는 뒷전이고 권력에만 눈이 먼 속물들 세상 같다. 모두 하는 짓들이 국가민족을 위한다는 말로 우롱을 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또 봐요, 그렇다. 그 보다는 매사에 겸허 겸손함을 보여줘야 한다. 러시아의 사상가이자 문학가 톨스토이는 사람들은 겸허한 사람을 좋아한다. 그런데 왜? 겸허한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는 걸까? 라고 했다.
우둔하지 않고 현명한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겸허해 질 수 있다. 겸허 그 행동 그저 사양하고 겸손한 동작이나 태도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한계와 부족함을 깨닫고 모든 사람에게서 배우려고 하는 마음자세다.
여기서 또 오세요? 와 또 봐요? 를 굳이 겸손과 겸허에 비유한다면 당연히 또 봐요 이다. 또 오세요? 와 또 봐요? 는 어와 아와 다를 바 없다.
그래서 보다 더 명랑하고 쾌활한 사회, 삶을 위해서는 겸손과 겸허함은 물론 또 봐요 그런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함을 인식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특히 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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