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구글
▲출처 = 구글 툴루즈 로트렉 <물랭루즈>
안노라 ▲‘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
안노라 ▲‘그림으로 만나는 서양사’인문학 강사▲‘벗에게 가는 길’인문학 공간 대표

화면을 zoom in해 봅니다. 2배쯤 가까이 당겨보면 위태로운 밤()을 들고 서 있는 연약한 등()의 흔들림이 보이겠지요. 화면을 zoom out해 봅니다. 2배쯤 밀어 멀리 보면 짙은 화장에도 감추지 못한 붉고 푸른 고독이 보이겠지요. 화려한 조명과 요란한 음악이 잦아든 어둡고 은밀한 시간, 술은 시나브로 사람들 속으로 흘러가 바위처럼 단단했던 외로움을 토닥입니다. 아직은 서로의 친절이 악용되지 않는, 아직은 서로의 부끄러움이 열등함이 되지 않는 공간, 이곳은 파리의 카바레 물랭 루주(빨간 풍차) 입니다. 오늘은 세기말의 애수와 환락과 예술의 상징이었던 물랭 루주의 작은 거인, 툴루즈 로트렉(Toulouse Lautrec, 1864~1901)<At the Moulin Rouge, 물랭 루즈>를 소개합니다.

 

화면의 중앙에 세 명의 신사와 두 명의 숙녀가 있습니다. 술병이 비었네요. 약간 지쳐 보이는 군요. 아마 주량을 넘어선 술과 시끌벅적한 유흥이 지나간 뒤 찾아오는 슴슴한 분위기 탓이겠지요. 톱 햇(Top Hat)을 쓴 남자들과 프릴이 화려한 여자들은 어둠을 건너갈 방법을 의논하고 있을까요? 위쪽엔 두 명의 여인들이 남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습니다. 손 내밀어 주는 신사도 없는 플로어에 그녀들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이네요. , 이제야 오른쪽 화면 귀퉁이, 그녀의 푸른 이마와 붉은 입술과 갈 곳 없는 마음이 보이는군요. 그나마 마음의 반은 잘렸네요. 이제 아무도 그녀의 반쪽을 찾을 수는 없을 거예요. 눈을 거두려는데 누군가 성큼 화면 안으로 들어옵니다. 키 큰 남자와 키 작은 남자. 그들이 몰고 온 것은 먹지같이 까만 우울, 락스로 닦아도 지워지지 않을 좌절의 얼룩이지요.

 

키 작은 남자의 이름은 툴루즈 로트렉입니다. 그는 막대한 재산을 소유한, 명망 있는 귀족의 아들이자 유전적 결함으로 뼈가 약하고 152cm로 성장이 멈춘 장애인이었습니다. 그는 어른의 가슴과 아이의 다리로, 절뚝거리며 서른일곱 해를 걸었지요. 사냥이나 승마는 꿈도 꿀 수 없는 아들의 육체는 권위적인 귀족이었던 아버지를 더욱 냉담하게 했습니다. 다행히 그의 재능을 믿었던 어머니가 평생 그의 곁에서 그를 지원합니다. 스물 두 살 즈음, 그는 어머니와 함께 몽마르뜨로 갔습니다. (Mont)은 언덕을 뜻하고 마르뜨(Martre)는 순교자를 의미합니다. 많은 기독교 신자들이 참형을 당했던 순교자의 언덕에 세상에서 밀려난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이곳에서 피카소는 <아비뇽의 처녀들>을 탄생시켰고, 반 고흐는 압생트를 마시며 창작열을 불태웠으며, 르느와르는 추위에 곱은 손으로 낮의 햇빛을 모아 캔버스에 뿌렸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르느와르의 캔버스에 밝고 환한 여인들이 춤을 추기 시작하지요.

 

몽마르뜨에서 로트렉은 그림을 그리거나 그리지 않을 때는 술을 마셨습니다. 그의 외모는 가끔씩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술잔을 옆에 두고 높은 의자에 앉아 변두리의 불안하고 창백한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내었습니다. 당시 파리는 가난에 찌든 어린 여자아이들이 일을 찾아 상경하는 곳이었습니다. 소녀들은 곧 매춘부나 사회에 엎드려야만 할 수 있는 허드렛일을 하게 되었지요. 로트렉은 불운한 그녀들 가까이 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외부인이었습니다. 그는 성병검사를 받으려고 줄을 서 있거나, 손님을 기다리느라 빨간 소파에 앉아 비루한 시간을 견디는 그녀들을 그렸습니다. 익살스럽게 웃기고 다리를 흔들며 춤추는 무희들도 그렸습니다. 사랑했지만 거절당한 여인도 그렸습니다. 그의 그림 속 여인들은 아무도 예쁘지 않았지만 누구도 고개를 돌릴 수 없었습니다. 뼈와 근육 속에 숨겨놓은 슬픔과 비애가 X-ray처럼 찍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릎을 굽히고 고개를 숙여야 만 볼 수 있었던 상처받고 낮은 삶의 모습을 로트렉은 키가 작아 볼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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