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한정규
문학평론가 한정규

사람이 한 말 또는 행동 중 사회나 공동체를 위한 옳고 바른 도리를 정의라 말한다. 플라톤은 지혜와 용기와 절제의 완전한 조화를 이르는 말이라 했다.
바른 일이라도 합리적이지 못한 일은 정의가 아니다. 어느 특정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지나치게 호의를 베푸는 것 또한 정의가 아니다.


다시 말해 정치지도자가 자신의 입지강화를 위해 과다한 무상복지정책을 펼치는 등의 포풀리즘을 정의라 하기에는 부적절하다.  공짜라면 독약이라도 좋아하는 인간의 심리를 이용하려는 적절하지 못한 수단인줄 인지를 하면서도 자기의 이익을 위해 베푸는 것 그래서 자신이 목적하는 바를 이루어 내는 것 그것을 정의라 할 수 없다.


선거 때면 정치인들은 포풀리즘에 목을 맨다. 특히 지나치게 분열된 사회, 대립이 그 어느 때 보다 치열한 때, 갈등이 심각한 때나 그런 사회, 불신이 판을 치는 세상, 그럴 때일수록 포풀리즘이 더욱 더 기승을 부려 더러운 시대를 조장한다.


그런 포풀리즘 때문에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국민들은 혼란에 빠져 보이지 않은 독재와 맞서야하는 불행을 맞는다.
그것은 한국에서만의 문제가 아닌 세계 각국 더 나아가 인류의 문제다.
결국 포풀리즘은 정의를 실종시킨다. 정의가 실종된 사회는 생명을 잃게 된다.
살아있는 듯 죽은 인간을 만든다.
죽음을 맞이한 사회가 된다.
지금 세계는 정치적 경제적 대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복지국가로 세계인의 눈길을 끓어 모았던 스페인 아르헨티나 스웨덴 노르웨이 폴란드 등 많은 국가들이 국가적 위기를 맞았다. 인류가 마치 총칼이 아닌 포풀리즘에 의한 3차 세계대전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 같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아닌 제 3영역의 새로운 정치사상이 태어나기 위한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도 외예는 아니다.


모두가 일하지 않고 잘 살 수만 있다면 지상낙원이 아닐 수가 없다. 그러나 그건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정치지도자들은 때만 되면 복지! 복지하는데 그것은 모두가 함께 죽자는 것이다.
문제는 과다한 무상복지정책이다. 과다한 무상복지 포풀리즘은 정의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자립정신을 상실 의타심만을 키워 결국 무능한 인간을 만드는데 있다.


좋은 사회, 건강한 민주국가를 위해서는 어떤 경우도 정의가 실종돼서는 안 된다.
정의가 곧 민주주의의 생명이라는 것 잊어서는 안 된다.
국민을 상대로 국민을 위한다며 크게 문제되지 않는 제도나 법을 바꾸는 것 그것 또한 과대무상복지정책과 다를 바 없는 포풀리즘이다.


돈과 재물을 나눠주는 무상복지정책, 포풀리즘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잘 못된 무상복지 또는 과다한 무상복지는 국민을 위한 정책이 아니다.
정치인 자신의 보이지 않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다.
정의가 실종되면 국가도 국민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의 길이다.
무상복지천국이 되면 많은 국민을 자칫 게으름뱅이를 만들고 또는 의타심만 키운다.


너나없이 국가에 의지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열심히 근면성실하게 사는 사람까지도 일할 의욕을 상실하게 한다.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갖는 생각이다. 정의를 저버린 정치인의 포풀리즘 꼼수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터무니없는 국민무상복지, 주민무상복지 운운하는 등 불의로 현혹하는 정치인에게 눈길을 주지 말아야 한다.
정의가 실종된 사회, 무상복지가 설치는 국가사회는 결과적으로 불행만을 초래한다. 선거 때만 되면 거리에서 무상복지가 칼춤을 친다.
그들이 추는 칼에 맞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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