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냇물에 발을 담근 채 무릎 위 컴퓨터로 화상 회의를 하는 프로그래머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인위적이다. 통상 IT 기업 종사자를 떠올리면 대도시의 높은 빌딩에서 일하는 모습을 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도쿠시마현, 그곳에서도 외곽에 위치한 해발 1000미터 높이의 산간 마을인 가미야마에 가면 이런 모습은 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흔하다.
새로운 삶의 방식을 원하는 사람들과 변화된 시대에 발맞춰 업무 혁신을 이루고싶은 기업들이 상주하고 있어서다.
‘마을의 진화’는 아사히신문 기자 간다 세이지가 가미야마 마을을 소개한 책이다.
100여명 이상의 마을 주민들을 인터뷰한 르포르타주이지만, 주민들의 유쾌한 이야기가 흡인력있게 독자들을 끌어당긴다.
가미야마에는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고 싶은 사람들과 원격 근무 등 새로운 업무 방식을 실험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IT 기업 종사자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온 예술가, 아이들을 여유롭게 키우고픈 젊은 부부 등 점점 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사람들이 모이고, 원주민들과 상생할 방법을 찾아나가며 시골 마을은 놀라운 방향으로 진화 중이다.
이전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삶을 살고 싶은 사람들이 모인 만큼 가미야마 마을에서는 여러 가지 실험들이 이뤄지고 있다. 이주자들과 원주민이 함께 세운 농업생산 법인 ‘푸드허브’는 가미야마에서 직접 기르거나 지역 농가에서 구입한 식재료로 만든 요리를 직접 운영하는 식당, 빵집, 잡화점에 판매한다.
그 과정에서 영농인을 양성하는 역할도 하고 지역 식재료에 꼭 맞는 신 메뉴를 개발하기도 한다. 지역 내 초중고 학생들에게도 농업 체험과 먹거리 교육을 진행해 먹거리에 대해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교육을 담당한다. 뿐만 아니라 급식 사업까지도 주관한다.
‘오노지 공동주택 프로젝트’는 공동주택을 건설해 이주자와 마을주민이 살 공간을 마련하는 일이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히 주거 공간을 늘리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거주 공간 외에 마을 응접실과 독서실 등이 있는 ‘아쿠이강 컴온’이라는 공용 공간을 만들어 가미야마에 사는 사람들이 다 같이 어울릴 수 있게 한다.
주택 입주 대상자 중에는 아이가 있는 세대도 포함돼 있는데 마을의 미래가 될 아이들을 지역에서 함께 키울 수 있는지 시험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역의 목재를 사용하고 목수를 고용해 집을 만들고 짜맞춤 목공 기술을 사용해 전통 건축 방식이 이어갈 수 있도록 해 가미야마 내 임업의 미래를 밝히는 데도 공헌하고 있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인구 감소와 지방 쇠퇴 문제를 겪고 있는 한국 사회에도 참고가 되는 사례들이 가득하다. 류석진·윤정구·조희정 옮김, 308쪽, 1만8000원, 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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