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뛸 사람은 뛰어라. 바삐 걸을 사람은 걸어라. 말리지 않는다. 걷기 싫으면 놀아라. 안 내쫓는다. 그러나 남의 발목은 잡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왜 앞으로 가려는 사람을 옆으로 돌려놓는가?”(p.23, ‘남의 발목은 잡지 말아라’ 중에서)
대부분 사람들은 이 회장의 말이라면 “마누라만 빼고 다 바꾸라”고 했다는 것만 기억한다. 이 말의 앞뒤 사정은 잘 모른 채 삼성 임직원을 향해 들이댄 명령이었다고만 기억한다. 마치 ‘어느 날’ 갑자기 불쑥한 한 말것처럼 알고들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이 회장이 1987년 삼성 총수인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언론 인터뷰, 저서, 신년사 등 숱한 메시지를 발표했지만 그 어느 한 마디도 충동적으로 ‘갑자기’ 말하지는 않았다. 한 마디도 심사숙고한 끝에 했다. 이는  일본에서 유학하던 어린 시절부터 몸에 밴 습관이었다. 생각을 먼저 정리하고 나서야 할 말을 정할 만큼 그는 신중에 신중을 기울였다.
이건희의 생애 장면 중 그의 말이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한 것은 역시 “마누라만 빼고 다 바꾸라”는 말로 유명해진,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키 호텔에서 열렸던 삼성 사장단 회의 발언이었다. 이날 회의에서, 그는 삼성 사장들을 향해 경상도 사투리로,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가며, 명령하고, 설득하고, 협박에 가까운 내용으로 열변을 토해 낡은 생각에 사로잡혀 잠자고 있던 사장들을 깨워 일으켰다.
삼성의 기업경영은 1993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1993년 삼성전자에서 재직 중이던 사십대의 일본인 디자이너가 작성한 ‘후쿠다 보고서’가 이건희 회장을 자극하여 신경영을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  보고서를 읽어본 이 회장은 이류에 안주하는 임원들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전쟁에서 이길지라도 시간을 오래 끌면 병기가 무디어지고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진다. 그래서 군대가 성을 공격하면 힘이 다한다. 또한 전투가 길어지면 나라의 재정이 바닥나게 된다. 그러므로 전쟁은 졸속으로 하는 한이 있더라도 빨리 끝내야 한다는 말은 들었어도 뛰어난 작전치고 오래 끄는 것을 본 적이 없다”(p.187, ‘뛰어난 작전치고 오래 끄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중에서)
저자는 “이 회장의 어록, 자서전, 에세이집 등을 ‘이건희의 말’로 엮은 이유 삼성의 모든 경영전략과 개혁과 도전, 발전계획의 바탕에는 이 회장의 말이 씨가 됐고 ‘열매’가 됐다”며 “이 책을 읽는 분들이 삶의 지표로 정하거나 좌우명으로 삼을 만한 말을 하나라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민윤기 엮음, 272쪽. 스타북스, 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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