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한정규
문학평론가 한정규

5·60여 년 전, 설날이면 아이들은 까치 까치설날은 어제 깨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 이래요 라며 친구들과 뛰놀았다. 그 설날이 지난 2월 12일이었다. 그 땐 아이들 너나없이 설날을 그렇게 기다리고 즐거워했다. 그런데 지금 아이들에겐 그 때와 같은 풍경은 볼 수가 없다.
사람이 태어나 한해 한해를 보내며 나이를 먹듯 ‘설날’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을 텐데 도대체가 몇 살이나 된지 알 수가 없다.
설날에 대한 최초 기록은 7세기 중국역사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를 기준으로 약 1천400살은 더 먹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삼국유사 1권 기이사금갑조에 의하면 신라시대 왕이 연회를 베풀고 국가형태의 설날 관습으로 발전했다고 기록 돼 있다. 그런 설날을 원일, 신일, 달도 등 열다섯 가지로 불렀다. 신일이나 달도라 하는 정월은 근신하고 조심하는 달이라 했다. 
달도라 함은 신라 21대 비천왕 때 궁중에서 궁주와 중이 간통을 한 사건이 있었다. 그 때 궁주와 중을 쏘아 죽였다. 그 후 매년 상해 상자 상오 일에는 만사를 꺼려 근신하였다. 그래서 붙여진 것이 달도라 하여 설의 또 다른 명명으로 전해졌다.
그런 설이 고려시대에는 원단, 상원, 상사, 한식, 단오, 추석, 중구, 팔관, 동지, 등 9대 명절 중 하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원단, 한식, 단오, 추석을 4대 명절로 했다. 
설날엔 소망을 기원하며 조상에 차례를 지낸다. 또한 성묘를 하고 그리고 정월대보름에 용궁마지로 설 명절을 끝냈다.
설날 아침 까치소리를 들으면 행운이, 까마귀소리를 들으면 불길하다고 했으며 설날 밤에 야광귀라는 귀신이 와서 신발을 신어보고 맞으면 신고 가는데 신발을 잃은 사람은 그 해에 나쁜 일이 생기는 등 재수가 없다고 했다. 
설날은 우리에게 오랜 세월을 거처 전해오는 민족의 최대 명절이면서 민족의 아픔 못지않게 수난을 겪어 온 명절이다.
조선 고종 3년에 태양력을 사용하기로 하고 음력 1895년 11월 17일을 태양력 1896년 1월 1일로 바꾸었다. 그러면서 설날은 음력 1월 1일로 변경하지 않았다. 
그런 설날이 일본 강점기에 이르러 수난의 역사가 시작됐다. 일본이 식민지통치를 하면서 우리나라 전통문화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억압하기 시작 설날 명절을 지내지 못하게 했다. 설날을 앞두고 떡 방앗간을 폐쇄하고 새 옷을 입은 사람에게는 옷에 먹칠을 했다. 그러면서 일본 명절인 양력설을 지키도록 강요했다. 
때문에 우리 설날은 일본 사람들 몰래 지냈다. 그러다 광복이 되고는 우리 전통적인 설날을 구정이라 하고 일제가 강요 지내 온 일본 설날인 양력 1월 1일을 신정이라 하며 2중과세를 했다. 그것을 1985년 정부가 음력 1월 1일 설날을 민속의 날로 정하고 1일간 국가공휴일로 지정했다. 그러다 1989년 설날로 하며 3일 연휴로 했다. 그리고 1999년 1월부터는 양력 1월 1일 하루를 신년 공휴일로 했다. 민족의 대 명절 중 하나인 설날이 우리민족과 함께 일제로부터 갖은 수난을 겪었다. 
2021년 그런 설날이 엊그제 지났다. 1960년대 말까지만 해도 음력 8월15일 추석과 음력 1월1일 설 명절에는 아이들은 모처럼 귀한 음식을 먹기도 했지만 새 옷과 새 신발을 부모가 사줘 기대에 부풀었던 명절이었으며 이웃 간에 새 음식을 만들어 나눠먹으며 정을 한껏 쌓는 좋은 기회였다. 서로가 단절된 생활을 하는 20세기 후반 이후의 설명절과는 확연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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