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한정규
문학평론가 한정규

지난 4월 딸이 아홉 살인 아들 김민석이를 데리고 왔었다. 민석이가 할아버지인 서재에 들어 가 혼자서 무엇을 하는 지 놀고 있었다. 방에는 다른 것은 없이 책 1천600여권이 있을 뿐이다. 
한 시간여가 지난 뒤 거실에 있는 필자에게 ‘다산 정약용에 대해 쓰여 있는 책’ ‘이제마에 대한 책’ 최용신에 대한 책‘ 세권을 들고 와 “할아버지 이 책 빌려주세요? 읽고 싶어요” 라 했다. 그 말을 듣고 초등학교 1학년이 읽기에는 쉽지 않은 책이라서 망설이다가. 
“그래 네가 정약용, 이제마, 최용신이 어떤 사람들인지 모르잖아 그리고 네가 읽기에는 조금 어려운데 읽을 수 있겠어?” 하고 물었더니 
“정약용에 대해, 이제마에 대해, 최용신에 대해 조금은 알아요? 그래서 더 자세히 알고 싶어요.” 하고서 “정약용 선생은 훌륭한 학자고, 이제마는 한약 약초에 대해 책을 쓴 분이고, 최용신은 농촌계몽운동가라고 알고 있어요”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것을 네가 어떻게 아느냐? 물었다.” “어린이가 볼 수 있도록 쓴 책이 있잖아요. 그 책에서 보았어요.” “그래 책은 할아버지가 아무에게도 빌려 주지 않는데 우리 민석이에게만 특별히 빌려 줄 테니 그 책 다 읽고서 책속에 담긴 이야기를 할아버지에게 말을 해 주어야 한다. 약속 할 수 있으면 가져가 읽어도 좋다.” 그래서 가지고 갔다.
초등학교 2학년 갓 올라간 어린아이가 읽기에는 너무 어려운 책인 걸 그런 생각을 하면서 빌려 줬다. 그리고 난 얼마 후 가정의 달 5월이었다. 아이엄마가 민석이와 윤석이를 데리고 왔다. 아이들이 온 그 날 신문사에 보낼 칼럼을 쓰느라 서재에 있었다. 얼마 전 책을 빌려갔던 손자 민석이가 서재로 와 옆에 앉으며 “할아버지 지금 글을 쓰고 계세요”
“그렇다.” 했더니 “할아버지 민석이가 시를 썼어요? 그 시를 할아버지가 쓰신 책에 꼭 넣어 주세요. 부탁할 게요?” “민석이 부탁인데 그렇고말고” 며칠 뒤 핸드폰에 문자로 시를 보내왔다. ‘선풍기가 앗 뜨거워’ 제목의 시다.
선풍기가 덥대요
여름이다./ 땀을 펄펄 흘린 사람들이 선풍기 앞으로 모여든다./ 모여 든 사람들 열기에 선풍기가 덥데요./ 그래서 선풍기가 앗 뜨거워 소리를 지른다./ 그 소리에 사람들이 어슬렁어슬렁 사라지자./ 이제 시원해 좋다/ 그리고 껄껄거린다.
아홉 살 아이의 시였다. ‘선풍기가 앗 뜨거워’ 제목부터 어른 아닌 아이 냄새가 물씬 풍겼다. 천진난만 그대로였다. 요즘 어린이들 끔직하다. 
하기야 열 살 미만 아이가 시를 쓰는 것 요즘뿐만이 아니다. 1535년 강릉에서 태어나 1583년 왕에게 시무육조를 올려 외적의 침입에 대비 10만 양병을 주청했던 율곡이 여덟 살에 화석정에 올라 시를 지었다 한다.     또 얼마 전 해성처럼 나타나 TV박스 속 화재인물이 된 트로트가수 신동 홍잠언이 나이 아홉 살이라 한다. 그는 20대와 30대들과 일행이 돼 국민들을 즐겁게 해 주고 있다. 그의 언행을 보며 뛰어난 재능에 소름이 돋는다. 요즘 아이들 모두 하는 언행을 듣고 보다 보면 모두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아홉 살이라는 트로트가수 홍잠언이나 할아버지 책에 자기가 쓴 시를 넣어 달라는 김민석이나 누가 어린아이라 하겠느냐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요즘 아이들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어른들 아이들에게 뒤지지 않도록 긴장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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