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국들이 ‘2050 탄소중립’을 위해 소형 원전에 주목하는 가운데, 관련 기술력 확보에 적극 나선 캐나다 내 지방정부에서 한국의 원자력 전문기관과의 협력을 타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에서 20년 이상 개발을 이어온 4세대 원전 기술이 저탄소 로드맵을 실현시킬 핵심이 될 것으로 본 것이다. 이를 두고 관련 업계에선 기술력을 인정받은 점은 고무적이지만, 경쟁력 유지를 위해선 정부의 꾸준한 투자와 지원 규모 확대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23일 원전 업계에 따르면 최근 캐나다 앨버타주(州) 정부는 한국 유일의 원자력 전문기관인 한국원자력연구원 측에 소듐냉각고속로(SFR) 기술 개발에 대해 협력 의향을 밝혔다.
정부 탈원전 정책에 원전업계 해외로 눈 돌려
양측이 협력에 뜻을 모으면 주 정부는 현지의 원자력 인·허가 기관에 사전 검토 등을 의뢰하는 수순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아직 논의 초기 단계인 만큼 결과를 예단할 수는 없지만, 해외에서 국내 기술력 수준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원자력연은 지난해에도 미국 원자력기업 USNC, 현대엔지니어링과 소형모듈형원자로(MMR)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이를 통해 캐나다 북부 오지 내에 전력공급용 고온가스로를 MMR 형태로 건설하고, 5년간 수소생산용 초고온가스로(VHTR) 기술 개발 등에 상호 협력키로 했다.
당시 업계에서는 정부의 탈원전 정책 이후 국내 원전 건설이 어려워지자, 국내 원전업계가 해외에서 돌파구를 찾아 나선 형국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캐나다는 ‘2050 탄소중립’을 목표로 소형모듈원전(SMR)에 베팅한 나라다. 캐나다 연방정부는 지난해 12월 연방·주 정부와 민간기업의 활동 계획을 담은 ‘SMR 액션플랜’을 대대적으로 발표하고 관련 기술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전략은 참여한 주 정부들의 강력한 의지를 수렴해 바텀업(bottom-up·상향식) 방식으로 마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앨버타는 온실가스 배출 제로를 위해 원자력에 주목한 연방정부의 구상을 환영한 지방정부 중 한 곳이다.
소형원전에 베팅한 캐나다…韓 차세대 기술력에 주목
캐나다는 SMR을 기후위기 대응 차원에서 석탄 화력발전의 대체재로 보고 있다. 광산 개발 등 독립형 산업 발전원 및 도서지방의 디젤 에너지원 대체 등의 용도로도 활용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지난달 캐나다 발전사업자인 브루스파워, OPG, 사스크파워 등은 캐나다의 SMR 도입 경제성 및 기술 타당성을 분석한 보고서(Feasibility of Small Modular Reactor Development and Deployment in Canada)를 발표하고 연방정부의 시기적절한 지원과 비용분담을 촉구하기도 했다.
캐나다가 관심을 가진 한국의 SFR 기술력은 20년 이상의 연구개발(R&D)로 일군 성과다. 원자력연은 지난 1997년 SFR 기술 연구에 착수해 지난 2001년에는 ‘칼리머-150’(150MWe급), 2006년에는 ‘칼리머-600’(600MWe급)의 개념 설계을 각각 완료했다. 칼리머-150의 경우 출력이 150MWe급이므로 소형 원전의 범주에 속한다.
SFR은 물 대신 소듐을 냉각재로 쓰는 차세대 원전이다. 열중성자를 이용하는 경수로와 달리 고속중성자를 이용해 핵분열을 일으키고, 이때 발생하는 열을 물이 아닌 액체 소듐으로 전달해 증기를 발생시켜 전기를 생산한다.
연료를 반복 재활용해 핵연료 활용률을 60배가량 높일 수 있고, 원전 폐기물의 발생도 줄일 수 있어 현재 가동 중인 3세대 원전보다 지속가능성과 안전성, 경제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사용후 핵연료(폐연료봉) 처리 문제의 대안으로도 꼽혀 ‘꿈의 원자로’라고도 불린다. SFR은 사용후 핵연료를 재활용하는 ‘파이로프로세싱’ 기술로 회수된 핵물질을 연료로 사용할 수 있다.
파이로프로세싱은 사용후 핵연료에서 우라늄 등 유용한 핵물질을 분리하는 기술인데, 플루토늄 같은 민감한 물질은 단독 분리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실현을 위한 신기술로 여겨진다.
파이로프로세싱 공정의 최종 결과물은 초우라늄(TRU) 물질로 이뤄져 있는데, 이를 SFR 핵연료로 제조해 태우면 독성이 높은 장수명 핵종을 반감기가 짧거나 안정된 핵종으로 변환할 수 있다.
위험성 낮춘 원전 신기술 확보…정부 지속적 투자 이뤄져야
이에 원전 업계에서는 탈원전 정책 기조와 별개로 사용후 핵연료 처분 문제와 관련해 파이로프로세싱·SFR 연구 지원을 이어가야 한다는 시각이 많았다.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발표한 이후 지난 2017년 12월 파이로프로세싱 사업 재검토위원회를 출범시키고, 2018년 4월 전면 재검토를 결정했다. 관련 사업에 대해 핵폐기물과 방사능 유출 문제 등 위험성을 우려하는 탈핵단체 측의 반대도 만만찮은 상황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세계 시장에서 한국이 수십여 년간 쌓아온 원전 기술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투자 연속성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온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SFR 연구에 대한 투자 규모가 크게 줄어든 상황”이라며 “해외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은 만큼 4세대 원자로 노형을 확대 지원하려는 정부의 장기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황주호 원자력이용개발전문위원회 위원장은 “원자력은 물론 석탄, 수소 등 난이도가 높은 에너지 관련 기술은 지속 투자로 따라잡지 못할 기술 격차를 확보해야 한다”라며 “정책 기조를 떠나 꾸준한 투자가 필요한 것”이라고 했다.
최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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