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보라
염보라

 

“내일까지만 나오시면 될 것 같습니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졌기에 내 머릿속에는 업무적인 일로 가득했다. 내가 다녔던 회사는 온라인 마케팅 대행업체로서 하루의 시작을 글로 시작해서 또다시 글로 마무리를 했다. 내가 담당했던 부서는 한의원을 홍보하는 것이었는데, 모니터에 앉는 순간부터 나는 목디스크를 앓는 환자가 되었다. 때론 아토피가 심하게 온 청소년이 되기도 했다. 근무시간 동안에는 ‘나’ 자신을 온전히 지워야 글을 쓰는 게 수월했다.

원고의 흐름은 지병을 앓게 된 사연과 한의원에 가게 되어서 결과적으로 치유가 되었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비슷한 내용을 반복하는 일이라 큰 부담이 있지는 않았지만 기계처럼 하루에 열 개의 원고를 작성해야만 했다. 한 자당 4원으로 계산을 하는데 한 원고당 2000자씩 책정을 해서 작성을 해야 했다. 내가 쓰고 있는 글은 매일 새롭게 탄생했지만 ‘작품’보다는 홍보성 글에 불과했다.

그날은 업무 과중으로 거북목이 찾아와 고생하는 직원에 대해서 초안을 잡고 있었다. 나는 한 명의 배우가 된 것처럼 그 인물에 집중했고, 그가 겪고 있는 통증을 상상으로 묘사하고 있었다.

그러다 대표님이 자신의 방으로 나를 불렀다. 어떠한 준비도 없이 아무런 ‘대사’도 정리하지 못한 상태로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대표님은 한참을 경로를 잃은 사람처럼 눈을 마주치지 못하더니 예상치 못한 말을 꺼냈다. 내일까지만 나오라는 거였다. 나는 항변도 못해보고 무미건조하게 ‘왜요?’라는 말만이 툭 튀어나왔다. 컴퓨터를 못 해서 마케팅 업체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거였다.

나는 그 말에 대해 대응을 했어야만 했다. 원고 작가를 뽑았던 것 아니냐고, 면접 때에는 글만 잘 써주면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하지만 ‘컴퓨터를 잘하지 못해서’라는 그 말이 나를 무너지게 했다. 이 말을 문장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었지만, ‘너는 왜 가장 쉬운 컴퓨터도 못 하냐’라는 말로 들려왔다. 맞다. 나는 컴퓨터를 잘하지 못한다. 그 이유로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간신히 악덕 중소기업에 취업하게 된 것도 있었다. 20대 중반까지를 대학원에서 문학 공부를 하고 글만 쓰던 내게 컴퓨터는 멀기만 한 대상이었다.

하지만 나는 컴퓨터를 잘하지는 못했어도 그날의 할당량을 해내 왔었다. 그 말로 나를 보호하고 싶었지만 이미 대표의 눈빛은 나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상태였다.

남들은 쉽게 통과하는 수습 기간도 채우지 못하고 나오게 되었다. 금요일을 앞둔 목요일이었기에 그토록 주말을 기다렸는데 기약할 수 없는 취준생의 길이 다시 열린 셈이었다.

내 인생은 참 많이 멈춰있었다. 남들은 고속도로를 타고 앞으로 나가는데 나는 갓길 한가운데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누군가가 나를 구제해 주지 않을까 희망을 품으면서.

 

정말 몇 년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다. 나도 예전에는 꿈 많던 청년이었다. 작가가 되고 싶어서 고등학생 때부터 문예 창작을 시작해 관련 학과를 전공했다. 그리고 폭을 넓히기 위해서 대학원까지 진학했다. 시간 강사가 되는 것이 나의 목표였는데 창작보다는 철학과 이론 중심의 수업 앞에서 회의감이 찾아왔다. 대학원 수료를 끝으로 다시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 후 3년 정도를 사회생활과는 단절했다. 하루, 이틀은 아무 생각 없이 쉬는 것이 편했다. 하지만 몇 개월 혹은 몇 년의 시간을 허비해 버리니 도저히 세상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부모님과 나와의 사이는 점점 멀어졌다. 가족이라고는 해도 아무런 능력이 없는 자식은 막막하기만 하고 미웠을 것이다.

 

마음이 제대로 아물 틈도 없이 세상은 손가락질했다. 능력이 없으니까, 너무 순진하니까 당하는 것이라고. 그 후로 이를 악물고 하루에 50개의 이력서를 작성하고 제출했다. 하지만 소위 높은 회사, 안정적인 기업들은 서류부터 탈락이었다. 몇 년간 쉬고 있었던 탓에 세상의 흐름을 읽지도 못했고 자격증도 마땅하게 있지도 않았다. 그나마 내가 자랑할 수 있었던 건 고학력자라는 타이틀과 글을 조금 쓸 줄 아는 능력 정도였다. 그렇게 한 중소기업에서 ‘칼퇴’, ‘글 작가’라는 단어만 가지고 지원을 했고 운 좋게도 합격을 하게 된 것이었다.

정말 잠깐의 빛을 만난 것 같았다. 이내 어둠이 나를 덮치려고 했지만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회사에서 배웠던 온라인 마케팅 원고 부업을 매일같이 지원하고 쓰기 시작했다.

300자의 글을 쓰고 600원을 받았다. 1500자의 글을 쓰고 3000원을 받았다. 이렇게 하루에 12개씩 글을 매일 같이 썼다. 정말 장르는 다양했다. 한의원부터 치과 치료, 세탁기 청소 업체, 자격증 홍보 원고 등. 열심히 원고를 작성했지만 제대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프리랜서 겸 아르바이트였기에 돈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세상이 나에게 참 잔인하다고 느껴졌었다. 아파도 아프다고 울거나 말할 수도 없었다. 아팠기에 더 뛰어야 하는 것이 사회라는 걸 뒤늦게 느꼈다.

퇴사하고 나서 주변에서는 내게 다시 회사에 들어가라고 말을 해왔다. 나도 그게 맞다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나는 늘 내 목소리를 내보지를 못했던 것 같다. 아주 잠깐만이라도 내 글을 써보고 싶다고 말하고 싶다.

긴 시간 동안 내가 잘못 선택한 ‘멈춤’의 시간 때문에 내 목소리는 너무 작아져 버렸다. 그 몇 년간의 지나간 시간이 큰 잘못이라면 앞으로 조금 더 열심히 살아보려고 한다.

현재도 나는 힘들다. 하루에 여러 편의 글을 쓰지만 정작 내 이름이 걸린 작품은 써낼 시간조차 없다.

하지만 오늘의 하루는 나에게 소중하다. 이 힘듦은 언젠가 진짜 내 목소리를 내기 위한 과정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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