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원 기자
윤명원 기자

 

용인시를 출입 했던 때의 일이다. 당시 지방행정 사무관 이었던 모과장이 서기관 직급인 구청장으로 승진해 노모께 인사를 드리러 갔다. 어머니께서 “넌 면장은 언제 되는 것이냐?”며 서운해 하셨다고 해 같이 있던 사람들이 한 바탕 웃은 기억이 난다.
안성시에 근무하면서 면장을 한 번도 못하고 국장으로 정년퇴임하신 모 국장은 면 면민들이 국장집은 몰라도 면장집은 안다며 서운함이 섞인 농담을 한 기억이 난다.
국어사전에 면장(面長)  면(面)의 행정을 맡아보는 으뜸 직위에 있는 사람. 또는 그 직위의 공직자이다. 로 되어 있다.
면민들은 면장에 대한 존경심이 누구보다 높고 면장의 말씀은 면의 정서를 좌지우지 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요즘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면 대항 체육대회를 할 때면 결속력이 제일 좋다는 해병전우회보다 더 단결력이 발동 된다. 물론 중심에는 존경하는 면장님이 있다.
어느 면 청사에나 가장 높고 넓은 강당 혹은 회의실에는 그간역임 했던 면장님의 사진이 걸린다.
시 청사 강당에 걸리는 역대 시장 사진과 같은 의미라면 한 번 제대로 열심히 해 볼 생각이 들 것이라는 기대감에서 좋은 제도인 것 같다.  
면장은 1956년 2월 지방자치법의 개정으로 주민이 직접선거를 했다가 1958년 12월에는 도지사가 임명했다.
1960년 11월에는 다시 주민이 직접 선출하는 선거가 실시되고 1년도 지나지 않은 1961년 9월에는 지방자치법에 관한 임시조치법에 따라 면은 지방자치단체의 지위를 상실하고 군수가 임명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정권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그렇게 했다지만 정치면장 시절, 면은 지방자치제가 실시 될 정도의 자치권을 가지고 있던 행정기관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현재는 면장에 대한 향수나 존경심 등이 퇴색 돼 씁쓸하다.
면에서 본청 발령을 받으면 영전이고, 격무 부서 근무자는 면으로 나가길 희망하는 공직자도 있으니 말이다.
한 번쯤 다녀가는 곳, 일이년 쉬었다 가는 곳으로 생각하는 아주 극소수의 면장들이 있다.
창의력과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면 30년 공직 생활 중 가장 보람 있을 근무지라는 생각들 수 있는 곳이다. 그냥 열심히 한 번 해보자, 오늘도 면장님! 우리면장님 파이팅! 
안성 = 윤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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