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마니’ 등 1960년대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에서 여주인공을 잇달아 맡으며 스타로 발돋움했던 티피 헤드렌(86)이 히치콕 감독으로부터 성추행 당했던 사실을 자서전을 통해 상세히 폭로했다. 
 

히치콕 감독이 헤드렌에게 병적일 정도로 관심을 나타내며 못살게 굴었다는 것은 이미 영화계 안팎에 널리 알려져 있는 이야기이고 주변의 증언도 여러차례 나온 적이 있다. 헤드렌 자신도 이전에 히치콕 감독에게 성적으로 희롱 당했으며 그 때문에 힘들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 하지만 히치콕 감독으로부터 성추행 및 협박 당했던 상황을 자세히 폭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BBC,가디언, 데일리 메일 등는 지난 10월3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BBC에 따르면 헤드렌은 이번달 중 출간될 ‘티피:자서전”에서 지난 1960년 초 히치콕과 영화를 함께 ‘새’를 촬영하던 당시에 자동차 안에서 성추행을 당했다. 히치콕이 자동차 뒷좌석에 타고 있던 그녀에게 ‘달려들어’ 입을 맞추는 등 추행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자신이 끝까지 거부하자 히치콕은 살아있는 새들이 날아다니는 방안에 헤드렌을 들여보내 며칠 동안이나 공격당하는 장면을 찍게 했다. 물론 이 장면은 영화사에 남을 명장면이지만, 헤드렌은 히치콕이 자신에게 보복한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히치콕이 사무실에서 자신을 강압적으로 추행한 적도 있었다고 헤드렌은 밝혔다. “그것은 성적이었다. 끔찍했다. 너무나도 충격을 받았고 혐오스러웠다. 내가 저항할 수록 그는 더 폭력적이 됐다. 그러더니 나를 위협하기 시작했다”고 헤드렌은 말했다. 하지만 자신이 또 저항하자 히치콕은 얼굴이 시뻘개지더니 “배우 커리어를 망쳐놓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헤드렌은 책에서 “끔찍하고도 끔찍한 순간이었다”며 “하지만 그 때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성추행과 스토킹이란 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고 말했다. 헤드렌은 또 “게다가 상대는 유니버설 영화사의 수퍼스타 감독이었던 앨프리드 히치콕이었다. 나는 그가 무명으로부터 구해낸 운좋은 어린 블론드 모델이었을 뿐이었다”며 “우리 둘 중 누가 영화사에 더 가치있는 사람이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히치콕은 자신을 거부한 헤드렌의 아카데미영화상 후보 지명을 방해하고 다른 역할을 맡지도 못하게 막았다. 헤드렌은 히치콕과 사이가 멀어진 후 실제로 수년 간 제대로 된 배역을 맡지 못했으며, 이후에도 배우로 왕성히 활동하지는 못했다. 중년 쯤부터는 주로 동물보호운동가로 명성을 얻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1980년 히치콕이 사망했을 때 헤드렌은 슬픔을 느꼈다고 밝혔다. 직접 장례식에 참석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는 히치콕이 자신의 배우 경력을 망쳐놓았는지는 모르지만 인생을 망쳐놓지는 못했다면서 “히치콕이 사망했을 당시 이미 나 자신이 치유된 상태였기 때문에 장례식에 가서 ‘굿바이, 탱큐, 히치’라고 말해줬다”고 회상했다. 
 

헤드렌이 첫 남편 피터 그리피스와의 사이에서 낳은 멜라니 그리피스는 배우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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