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연배와인 칼럼니스트·경영학 박사·우아한 형제들 인사총괄 임원.
변연배와인 칼럼니스트·경영학 박사·우아한 형제들 인사총괄 임원.

그레이트 아메리칸 비어 페스티벌(GABF)는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연례적으로 열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맥주 축제이자 품평회이다. 수천개의 맥주 브랜드가 참가한다. 2009년 대회에서는 처음 선보인 ‘샤토 지아후 에일’(Chateau Jiahu Ale)이라는 생소한 브랜드가 ‘베스트 스페셜티’ 카테고리에서 금상을 받았다. ‘스페셜티 벌꿀 맥주’ 카테고리에서는 ‘미다스 터치 에일’(Midas Touch Ale)’이 동상을 받았다. 델라웨어주의 ‘도그피쉬 헤드’(Dogfish Head)라는 양조장에서 출품했는데, 수천년 전 고대의 레시피를 되살린 양조법이라 해 화제를 모았다.
‘술의 역사를 찾는 인디애나 존스’로 불리는 펜실바니아 대학교의 분자 고고학자인 패트릭 맥거번 교수는 2004년 중국의 허난성 지아후(賈湖)의 신석기 유적지에서 9000년전 인류가 처음 술을 양조한 흔적을 발견했다.
유적지에서 발굴된 토기에는 술의 화학적 성분이 남아 있었고, 이를 분석해보니 원료는 쌀, 포도, 산사나무 열매, 벌꿀이었다. 이 술의 종류는 현재의 맥주, 와인, 벌꿀주가 혼합된 형태로 보인다.
샤토 지아후 에일 맥주는 도그피쉬 양조장이 9000년전 양조법을 되살려 2009년에 만든 술이다. 알코올 함량은 10%다. 가격은 병당 13달러로, 일반 맥주보다 6배나 비싸다. 맥주 평론지 ‘비어 어드버킷’(Beer Advocate)에서 평점 85(매우 좋음)를 받았다. 또 ‘미다스 터치 에일’운 2700년전 술잔에서 추출한 화학적 성분을 분석해 양조했다. 이 술잔은 터키 중부 고르디온(Gordion)에 있는 프리기아 왕조 유적지의 미다스 왕 무덤에서 1957년 출토됐다. 이 두 맥주는 이후에도 여러 품평회에서 금상과 은상을 받았다.
신석기 시대의 술이 현대인에게도 환영받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지아후 에일 양조법을 자세히 살펴보면, 재료가 비슷해 보여도 9000년전과 같은 맥주라 부르기 어렵다.
도그피쉬가 밝힌 지아후 에일 레시피를 보면 기본 재료로 오렌지 꽃 벌꿀, 맥아, 모스카트 종 포도, 산사나무 열매를 사용했다. 또 사케 효모를 사용해 한달간 발효했다.
먼저 벌꿀은 당시에도 자연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어 지금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지아후 유적의 술은 쌀을 사용했으나, 되살린 레시피에서는 쌀 대신 맥아를 사용했다. 술 양조에 맥아를 처음 사용한 것은 6000년전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이었다. 9000년전에는 맥아가 양조에 쓰일 수 없다.
도그피쉬는 당도가 높고 와인을 만들기 쉬운 모스카토 포도를 사용했지만, 지아후에서는 중국 고유의 야생포도를 사용했을 것이다. 비니페라 포도가 아니면 그 자체만으로 술을 만들기 어렵다. 비니페라 포도가 처음 중국 본토에 들어온 시기는 한 무제 때인 기원전 2세기경이다. 특히 지아후 유적이 있는 허난성 산둥지역에는 당 태종 때인 7세기경에 처음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사나무 열매는 그때나 지금이나 구하기가 쉽다. 하지만 산사나무 열매는 당도가 낮고 과육이 적어 발효하기 어려운 열매이다. 설탕이나 꿀을 과일에 발라 먹는, 요새 우리나라에 유행중인 ‘탕후루’(糖葫芦)는 송나라 시절 산사나무 열매에 꿀을 발라 꼬챙이에 꿰어 먹던 것이 시초다.
또 신석기 시대에 사케 효모와 같은, 인공적인 효모를 사용했을 리도 없다.
9000년전 레시피로 만들었다고 하지만, 사실은 현대적인 양조법으로 만든 것이다. 요즘과 동일한 양조법으로 만들고 그 과정에 포도, 산사나무 열매, 벌꿀을 첨가한 것에 불과하다. 요즘의 과일 맥주와 크게 다르지 않다. 마케팅을 위한 상업적 수사에 불과한 셈이다.
술의 양조에는 기본적으로 당과 효모가 필요하다. 미생물인 효모가 포도당을 분해하면 에탄올과 이산화탄소가 생긴다. 빵 반죽에 효모를 넣으면 부풀어 오르는 원리는 술을 만드는 원리와 같다. 효모가 빵 반죽 속의 포도당을 분해하면 알코올은 빠져나가고 이산화탄소가 빵 속에 갇혀 그 압력으로 빵이 부푼다. 대신 이산화탄소가 날아가고 알코올이 남는 것이 술이다. 알코올에 산소와 함께 아세트산균이 작용하면, 술이 쉬어 식초가 된다.
술과 빵을 만드는 데는 유익한 효모도 채소나 김밥에서는 부패균이 되기도 한다. 효모는 포도당이나 과당 같은 단당류는 발효를 시킬 수 있지만, 다당류인 쌀이나 다른 곡물은 바로 발효시키지 못한다. 이때 다당류인 곡물을 분해해 단당류로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이 누룩이다. 누룩에 있는 곰팡이가 당화제로 작용해 곡물을 당분으로 만들고, 함께 함유된 효모는 당화된 곡물을 발효시켜 술을 만드는 것이다.
하나라, 상나라 등 그 이전 시대 자료를 정리해 춘추전국시대에 편찬된 ‘상서’(尙書)에 누룩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 등장한다. 누룩을 곰팡이가 핀 누룩인 ‘국’(鞠)과 싹이 난 엿기름 ‘얼’(糵)을 합쳐서 ‘국얼’(鞠糵)로 불렀다. 그때는 ‘누룩 국’(麴)자를 쓰지 않았다. 후한 때 허신(許愼, 58~148)이 저술한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조와 기장으로 만든 누룩(곡, 麯)과 구분해, 얼(糵)은 단술(례, 醴)을 만드는 엿기름만을 의미하게 된다. 북위 때인 532~549년경 편찬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농서인 ‘제민요술’(薺民要術)에는 술과 된장의 양조법과 함께 ‘와국법’(臥麴法)이라는 누룩 제조법이 나온다.
그럼 누룩이 없던 9000년전에는 쌀, 벌꿀, 야생포도, 산사나무 열매만으로 어떻게 술을 만들었을까?
생쌀은 씹고, 나머지 재료는 씹거나 으깨서 토기에 섞었을 것이다. 침 속에 있는 아밀라아제는 쌀을 당화시킨다. 그 이후의 발효는 자연이 맡았다. 벌꿀, 포도를 비롯한 과일이나 대기 중에는 천연적인 효모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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