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한정규
문학평론가 한정규

1960년대 중소도시 산간마을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몇날 며칠 동안 한 친구가 보이지 않아 찾아 가보니 방안에 앉아 있었다. 
그를 찾아간 친구가 요즘 너 보이지 않아 혹시 싶어 찾아왔다. 무엇하는 거야? 그렇게 묻자 나, 날이면 날마다 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래 너 그렇게 앉아 있는 걸 보니 참으로 답답하구나?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지? 고민, 고민 있지. 있다마다. 그래서 곡기를 끊고 단식을 한다. 물이나 음료는? 물론 마신다. 그래 죽지는 않을 것 같구나?  곡기만 끊는 것은 단식이 아니다. 본시 단식은 물이나 음료도 마셔서는 안 된다.
이제 보니 너 단식 그 말도 잘 모르는 멍청이로구나 그러면서 똑똑한 척은, 단식 내가 말해 볼까? 단식이란 의식적으로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음식은? 사람이 먹고 마실 수 있도록 만든 모든 것을 말한다. 그런데 곡기만 끊고 물을 포함한 음료수를 마시는 것 그것은 단식이 아니다. 
건강을 위해 계획적으로 일정기간 곡기를 끊고 물을 마시는 사람도 있다. 결국 너도 그런 것이었구나? 그러면서 단식을 한마며 동네방네 소문을 퍼트린 게로구나? 무기한 단식을 한다기에 죽으려고 작심했나싶어 안타까워했었는데 내 생각이 짧았구나. 그게 무기한이고 그게 단식이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괜히 걱정을? 오래 전에 시골의 한마을에서 100일 동안 단식을 한 사람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 소리를 접한 사람들은 대단하다고 부러워했다. 그런데 훗날 그 사람에 대해 전해진 바에 의하면 남들이 보는 낮에만 단식하는 것처럼 하고 밤이면 좋은 음식을 준비해 먹었다 했다. 
그런 그가 한다는 말이 내가 누구냐? 한다고 하면 하는 사람이다. 나를 믿어 주라 그리고 밀어주라 마을사람들을 위해 무엇인가 꼭 하고 싶단 말이다. 
그래서 곡기를 끊고 음료수를 마시고 골똘히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단식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쉽게 말해 멍 때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왜? 그런 나를 몰라주는 것인지 참으로 답답하다. 그렇게 말했다. 한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초등학교 3학년 쯤 된 한 어린아이가 그래 제가 한 마디 할까요? 그래 해 보렴, 어른들은 권력에 대한 욕심이 많은가 봐요. 권력을 놓고 편을 갈라 쌈질만 하고 있는 것 같아 보여요.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싸우면 안 된다. 양보하면 안 되나 그러면서 양보만 하라고 한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도와야 한다. 정의로워야 한다. 말로는 그렇게 하고 어른들은 불의를 일삼고 걸핏하면 쌈질이니 꼴 보기 싫어요. 
지금도 보세요, 단식을 한다며 곡기만 끊고 물이며 좋은 음료를 마시는 등 단식 아닌 단식을 하고 장기간 단식을 한 사람 행세를 하잖아요? 그것 모르세요? 그 아이 말을 듣다보니 어른으로서 무어라고 변명할 수도 없고 부끄러웠다. 
 인간은 너나없이 그 무엇보다 정의로움과 믿음을 더없이 중시해야 한다. 물론 좋아하는 사람들은 거짓, 불의, 별짓을 해도 그래 잘한다. 잘한다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저 사람 그 정도밖에 아니었어. 이제 보니 자격도 능력도 없는 사람이었구나? 동네 반장도 시켜선 안 되겠군? 그렇게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행동거지 조심해야 한다. 특히 정치인은 더. 
최근 무기한 단식을 한다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 단식을 했다고 하느니 건강을 위해 멍 때리고 있었다라고 그랬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그가 뭐 철인인가? 그 긴 기간 단식을 했단 사람이 쌩쌩한 걸? 연극은 완벽해야 관객의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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