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시 엄태성 주택행정팀장
 이천시 엄태성 주택행정팀장

덥고 습한 여름 장마철부터 아침저녁으로 쌀쌀함을 느끼는 초가을 지금까지 거의 3개월여를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 듯 현장과 사무실을 들락거렸다. 
반지하주택 침수 방지와 주거 취약계층의 주거개선을 위해 보고, 듣고, 느낀 체감사항을 반영해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함이다. 
마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보면 자식은 있는데 왕래가 없거나 아예 연락이 두절 되어 혼자 거주하시는 어르신들이 상당히 많다. 
관고동 ㅈ빌라 지하 문을 두드리면 심한 욕설부터 들린다.
그리고 10분 정도 지나면 할아버지가 목발을 짚고 나오신다. 반지하라 계단은 6개밖에 안 되지만 오르는 데는 꽤 시간이 걸린다. 
위태위태하지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 만나는 내내 불만 섞인 욕을 하시는데 서글픈 마음을 표현하시는 것 같아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빗물 방지턱을 설치해주고 전기공사를 하면서 자주 만났다. 
정이 들었는지 욕설이 사라졌다. 하지만 욕설 대신 사무실로 걸려 오는 할아버지의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걸친 총체적 견해를 하루에도 30분 이상 들어야 했다. 외로워 말벗이 필요하신가 보다.
설성면 ㅅ마을에 거주하시는 할머니는 추운 겨울에도 외부 재래식 화장실을 이용하신다. 
인자한 웃음을 가진 얼굴에는 고단한 모습의 주름이 깊게 패여 있었다. 바람만 막아주면 좋겠다면서 무슨 사정인지 벽면 액자 속 자식 얘기는 말씀을 안 하신다. 올겨울은 따뜻한 화장실을 이용하실 수 있게 됐다. 위험하지 않도록 비가림시설도 만들고 단열시설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희망하우징사업 대상자로 율면의 장모씨를 선정하고서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재능기부로 수리하기에는 건물이 너무 오래되어 보수할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당사자도 포기서를 제출했고 우리도 여러 가지 사정으로 포기하기로 했다. 
이 일이 아니어도 중앙정부와 경기도 사업을 해야 했으니 핑계는 있었다. 
그런데 당장 쓰러질 것 같은 대상자의 주거지가 시간이 지나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질 않았다.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해결책이 필요했고 우리가 못하면 외부에서 도움을 받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고민 끝에 협약을 맺자는 결론에 이르렀고 이천시 자원봉사센터 등 봉사단체와 예산·인력·물품 등 재능기부로 분담해 집을 수리하기로 업무협약식을 체결했다. 
드디어 8월 29일 협업희망주택 1호 사업 발대식을 하고 본격적인 공사를 진행했다.
8개 협업단체 15개 사업체가 참여하는 대대적인 일정이었다. 
방역복과 고글을 착용한 적십자구만리봉사회원의 내부 철거를 시작으로 폐기물 처리, 보일러 설치, 창호 시공 등 분야별로 공사가 이루어졌고 많은 분의 열정적인 봉사 정신으로 사업 대부분이 마무리됐다.
‘권한이 없어서, 예산이 없어서, 인원이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 이유는 또 다른 이유를 만든다. 그런데 현장을 보고, 고민하고, 해야겠다고 생각하니 그 많던 이유가 사라져버렸다.
이천시는 주거 취약계층에 대한 주거환경개선, 복지 사각지대 해소, 위기가구 돌봄 등의 문제를 현장 행정을 통해 해결하고 있다. 
현장 행정이야말로 공무원들의 기본자세이기 때문이다. 
이천시민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시민과의 밀접한 접촉을 통해 시민이 가려워하는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 주는 것이 아닐까? 희망하우징사업이나 협업희망주택사업을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현장 행정을 통한 애민(愛民)을 통해 현실적 문제를 해결한 결과물이 아닌지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오는 10월 31일 협업희망주택 1호 사업의 조촐한 준공식이 열린다. 장모씨는 얼마나 기뻐하실까? 빨리 그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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