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대죽

 
최철호

 
죽이라면 왠지 죽도록 먹기 싫었다
초점 잃은 눈동자로 흐리멍덩한
풀대죽은 더욱

쉽게 지워지지 않는
풀대죽 사연
처량한 인생의 보릿고개
아슬아슬 넘게 하였고

그 부드러움은
가끔씩 혀를 춤추게 하고
하늘 노랗던 현기증도 다독여
졸라맨 허리띠를 잠시나마 풀게 하였다

그뿐이랴
흉년의 위기 때마다
기아 속 인생 보모가 되어
젖뿌리 물려 눈물 닦던
구황의 주역 풀대죽

풀대죽을 경험한 세대에게도 이제는 잊혀 가는 음식이지만 아직도 별미로 찾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부드럽고 달콤한 맛을 내는 죽, 보릿고개의 구황식으로 다 익지도 않은 호박을 삶아 그 속에 보릿가루나 밀가루를 넣든가 그것도 없으면 밀기울이나 푸성귀를 넣어 끓여낸 죽이다. 말 자체가 풀을 넣어 끓인 대용음식이다. 지금 세대는 경험하지 못하였고 50대 이전의 세대에서는 막연한 추억으로 남은 음식이다. 그때는 그랬다. 보리는 아직 수확할 시기가 이르고 양식은 바닥나 굶어야 하는 시기에 풋호박이나 나물을 가루에 섞어 끓인 죽은 일시적인 배고픔은 면하게 했으나 서너 걸음 걸으면 소화가 되어 다시 배고픔을 느끼는 그야말로 구황식이다. 당시의 상황은 전쟁을 끝낸 뒤의 불황시대라 누구라도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지만 그것마저 없어서 굶은 사람은 기막힌 삶을 살아냈다. 최철호 시인은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으로 나라의 기근이나 국민의 굶주림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직접 겪은 일로 인하여 죽을 대하기도 싫은 경험이 그 시절의 상황과 합쳐져 읽는 사람의 감정을 건드린다. 없을 때나 있을 때를 막론하고 실컷 먹었던 음식은 대하기도 싫다. 어렸을 때 죽지 않으려고 먹던 풀대죽의 가난은 풀대죽이 아닌 다른 죽도 외면하게 하고 당시의 회상은 지금도 안타깝다. 그래도 풀대죽의 부드러움은 잊지 못한다. 혀를 춤추게 하고 현기증을 일으키던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한 사람의 역사는 전체의 역사다. 삶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므로 삶의 폭은 전체를 아우른다. 구황음식 풀대죽을 현실감 있게 그려내어 음식의 귀중함을 알리고 그 시절의 상황을 표현한 시인의 감성은 뜨겁다.  [이오장]

정석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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