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광현
주광현

나의 70대에 관한 다음 얘기는 또 이렇게 이어진다.
애절한 사연을 남기시고 짧은 생애를 살다 가신 할아버님에 대한 얘기다. 우리 할아버님은 남자 형제만 모두 다섯이었다. 그중에서 우리 할아버님은 막내인 다섯 번째이다. 우리 할아버님보다 세 살 위인 넷째 할아버님의 얘기를 하고자 한다.
이 할아버님은 스물한 살 꽃다운 나이에 괴질로 요절하셨다고 한다. 혼전에 작고하셨기에 자손이 있을 수가 없다. 당시에 봉분도 제대로 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100여 년의 오랜 세월 속에 봉분이 꺼졌던지 풀숲에 가려 있는 봉분은 평지의 바닥보다 약간 도드라진 정도였다. 이 할아버님의 봉분을 해 드려야겠다고 혼자 속으로 마음먹고 기회를 본 것이 10여 년이 훌쩍 흘렀다. 마음에 간절하게 깊이 새긴 것은 그래도 때가 오는가 보다.
2016년 4월 20일, 내가 72세 되던 봄이다. 이날을 잡아 드디어 이 할아버님의 봉분을 해 드렸다. 그리고 조촐하게 작은 비석도 세워드렸다. 뿐만 아니라 봉분 앞 잔디밭 너머와 봉문의 좌우 잔디밭 너머 공간에 꽃밭을 만들어 봄부터 가을까지 계절 따라 꽃들이 피고 지도록 산소의 조경에 힘썼다.
봄에는 수선화 꽃, 봄과 여름엔 작약 꽃, 솔란 꽃, 시계꽃(자주달개비꽃), 여름과 가을엔 글라디올러스 꽃, 봉선화꽃, 칸나꽃, 코스모스꽃, 달리아꽃, 초본 백일홍꽃, 늦가을엔 국화꽃 등등 30여 종 이상의 꽃들이 산들바람에 산들산들 할아버님을 즐겁게 해드리고 있다. 산소의 잔디 벌초도 한 해에 대여섯 번씩하여 볼만하게 가꾸고 있다.
이 할아버님은 만 20세의 꽃다운 나이에 가셨으니 그 설움이 얼마이랴.
이 할아버님이 12세(만 11세) 때 동생인 우리 할아버님(당시 만 8세)과 함께 할아버님 집 앞 개울가에 소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고 한다. 그 소나무가 성장 과정에서 모진 시련을 겪어가면서도 다행히 성목으로 잘 성장하여 지금은 낙락장송이 되어서 마을의 기품과 운치를 드높이고 있다. 소나무가 성목이 되기 전에 생명에 위협을 받을 정도로 두 번의 아픈 시련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내용은 지면 관계로 생략한다.
할아버님의 묘지 앞에 세운 비문은 아래와 같다.
    
비석의 전면
新安朱公 景仁之墓
비석의 이면절
公은 1870년 3월 2일 朱子孫 31世 應和公의 5男 中 4男으로 태어나 21歲의 한창 나이에 疾病으로 天折하였다. 公이 12歲이던 1881년 봄 同生과 尤述과 마을 가운데 아기소나무를 심었다. 公은 갔어도 마을 앞 老松은 어제도 오늘도 그윽한 솔향을 쉼 없이 뿜어 마을의 기품을 높이고 있다.
2016年 4月 20日 종손(從孫) 광현 세움
    
내가 고향에 가면 우리 부모님의 성묘와 더불어 이 할아버님의 성묘부터 한다. 산소에는 이상이 없는지 살피고 산소에 자라고 있는 화초들은 제대로 자라 꽃을 피우고 있는지 살핀다. 그리고 산소에 대한 일감이 무엇인지 시간은 얼마나 걸릴지 일할 계획을 세운다. 벌초를 해야 할 것으로 판단되면 벌초를 하고, 잡초를 제거해야 할 것 같으면 호미로 잡초를 뽑아낸다. 이런 일을 2~3일 내에 마치고 광주 집에 온다. 그러기에 벌초도 1년에 한 번만 하는 게 아니다. 매년 4월에 첫 벌초를 하면 5월부터 9월까지 매월 하여 총 대여섯 번에 걸쳐 벌초를 한다.
이제 내 나이 80에 가깝고 보니 산소에 벌초하는 일도 버겁기만 하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움직일 수 있는 한 산소를 가꾸려 한다.
할아버님 산소 관리에 대한 얘길 했으니 우리 부모님 산소 관리에 대한 얘기도 해야겠다. 우리 아버님은 양지바른 큰집 산에 유택을 마련했으나 봉분을 비롯하여 산소의 잔디가 성하지 않고 잡초가 세력을 더 뻗어갔다. 몇 번의 개사토를 하여 잔디를 입혔지만 잔디가 잡초에 치여 볼품이 없었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멧돼지가 출몰하여 봉분을 파헤쳐 그대로 둘 수가 없었다. 멧돼지의 횡포를 막고자 봉분을 둘레석으로 두르고 새로 보완했다. 그랬는데도 불구하고 영악한 멧돼지는 이번엔 앞발로 둘레석을 딛고 봉분 꽃대기 부분을 파헤쳐놓았다.
봉분 뗏장 속의 흙에 서식하는 굼벵이나 지렁이를 잡아먹기 위해 멧돼지가 봉분을 파헤친다는 것이다. 어찌됐건 그대로 둘 수가 없어 개사토를 다시 하고 이번엔 산소 둘레에 펜스를 쳤다. 원천적으로 산소에 멧돼지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마지막 수법이다.
따로 마련한 어머님 산소도 멧돼지의 침입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 펜스를 쳤다. 부모님 산소에도 할아버님 산소처럼 산소 둘레에 화단을 만들어 산소 관리에 마음을 쓰고 있다.
이런 일들은 나의 70대에 모두 한 것이다. 내 나이 70대 초반에 시작하여 70대가 저물어져 가는 지금까지는 물론 앞으로 내년부터 시작되는 팔십대에도 계속해서 산소의 꽃밭을 가꾸고 조경에 힘 쓸 생각이다.
산소에 오면 뭐가 그리 좋은가? 그런다 나는 산소에 오면 할 일이 있어 좋다. 내가 관리하는 아버님 산소와 어머님 산소, 그리고 자손이 끊어진 넷째 할아버님의 산소는 모두 따로따로 있다. 그중에서 어느 산소이건 산소에 막 들어서면 산소에 계신 아버님이나 어머님, 그리고 할아버님께 내가 산소에 왔음을 고한다. 그리고서 그동안의 안부를 여쭙는다, 그다음 최근에 있었던 나의 행보를 말씀드린다. 이런 일련의 내 행동은 마치 살아 계신 부모님이나 할아버님께 말씀드리듯 자연스럽게 말씀을 올린다. 지면 관계상 긴 얘기는 생략한다.
어느 산소든지 산소 주변에 있는 나뭇가지에 앉아 노래하는 철새들의 노랫소리를 나는 좋아한다. 무딘 내 감정을 산새의 노랫소리로 헹구어 낼 수 있어서 좋다. 뿐이랴. 산소에 와서 좋은 것은 더 있다. 산소 둘레에 심고 가꾸는 화초들과 소곤소곤 얘기를 나누는 것도 좋고, 지나는 산바람을 잡아놓고 바람 얘길 들어보는 것도 산소에서 즐기는 쾌감이다. 부모님의 산소와 절손된 넷째 할아버님의 산소를 정성껏 가꾸는 일은 참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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