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전등

이오장

삼식이라는 말 귓속에 앵앵거려
빈 가방에 구겨넣고 오르는 산
헐벗은 산길에 찍힌 등산화 자국에
내 걸음이 맞지 않는다
뒷굽 닳은 운동화가 찍은 자국은
이슬비 한 방울 담지 못할 듯 하다
기슭에 닿기전에 되돌아 섰다가
바윗자락에 앉아 고개 숙여도
오르는 발길들이 걷어차는 것 같아
빈 가방 돌려 앉고 걷는다
점심 시간을 알리는 햇빛이 밝다
시선 끄는 음식 간판들이 밝다
버스정류장 노선표가 밝다
혼란한 밝음이 어지러워 갈 곳이 없다
서둘러 새벽차 타고 출근하여
한 달 꼬박 채워 받은 월급은
소리 지르지 못한 채 통장에 들어가고
한계를 넘지 않는 지갑 두께를
재보지 않고 보낸 청춘
한꺼번에 받은 퇴직금은 아들 유학비
그것으로 임무를 마쳤는가
앉을 곳 하나 준비하지 못한 죄인
아내는 그런 나를 낮전등이라 부른다
갈길 정하지 못하고 걷는 길에
앞을 막아서는 선거홍보 프래카드
그렇지 나라를 위할 일이 남았지
한표를 던져 옳은 놈을 뽑아야지
아무리 환한 낮이라도
전등을 밝혀 희미한 빛이라도 내야지
지공거사 카드를 꺼내어 전철을 탄다

이오장 시인
이오장 시인

이오장 시인은 한국문인협회, 국제PEN한국본부 이사로 한국현대시인협회 부이사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부천문인회 명예회장으로 활동. 제5회 전영택문학상, 제36회 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으로는 <왕릉> <고라실의 안과 밖> <천관녀의 달> <99인의 자화상> 등 18권과 동시집 <서쪽에서 해 뜬 날> <하얀 꽃바람>, 평론집 <언어의 광합성,창의적 언어>가 있다.

 

정석철  기자

저작권자 © 경기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