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가장 역동적인(dynamic) 미술관이죠”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만난 한 큐레이터는 이 미술관에 대해 한마디로 이렇게 코멘트했다.
전시를 보던 중 유난히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이 있었는데, 그 소장처가 이곳이었다. 본격적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기 시작한지 10년도 안된 젊은 사립 미술관. 그러나 컬렉션이나 전시, 미술관이 지향하는 바로 따지자면 필라델피아의 반스파운데이션, 뉴욕의 프릭컬렉션이 연상되는 미술관. 방탄소년단(BTS)의 RM이 2021년 찾아 ‘돌의 마을’이라고 포스팅한 그곳.
바로 글렌스톤 미술관(Glenstone Museum)이다.
글렌스톤 미술관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약간의 품을 들여야 한다. 워싱턴 DC에서 북쪽으로 30분가량 떨어진 메릴랜드에 위치하고 있다.
◆16만평 숲 안에 숨어있는 미술관
빌딩이 낮아지고 도로가 좁아진다. 회색 풍경이 평야와 낮은 구릉이 섞인 초록으로 바뀔 때, 한적한 시골길에서 갑자기 글렌스톤 미술관 팻말이 나타난다. 탁 트인 평지에 낮은 돌담길, 주의해서 보지 않으면 미술관임을 모르고 지나치기 딱 좋다.
미국에서 가장 큰 사립현대미술관이자, 최고 컬렉션으로 꼽히는 이 미술관은 16만평 숲 안에 숨어있다.
글렌스톤 미술관은 2006년 미국 다나허 그룹(생명공학 분야, 진단 분야, 환경&응용 솔루션을 공급하는 글로벌 기업)의 창립자 미첼 레일즈(Mitchell Rales)가 설립했다. 이때는 일주일 중 이틀만 일반 관람객을 받았다. 컬렉션은 훌륭했지만, 미국의 다른 사립 재단 미술관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미술관 확장 공사가 시작된 2013년까지 누적 관람객은 1만명에 불과했다.
확장 공사는 2018년까지 약 5년간 이어졌다. 공사에 들어간 비용은 약 2억1900만 달러. 미술관 부지도 53핵타르(16만평)로 커졌다. 
2019년엔 미술잡지 아폴로가 ‘뮤지엄 오프닝 오브 더 이어’(올해의 개관 미술관)로 선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 관객에게 글렌스톤 미술관이 익숙해 진 것은 이 같은 규모나 명성 때문이 아니다. 미술 애호가로 잘 알려진 BTS의 RM이 2021년 방문하면서 입소문이 났다.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돌의 마을’이라는 짧은 문구와 함께 미술관 이곳저곳의 모습을 남긴 것이다(글렌스톤이라는 이름은 인근 도로인 ‘글렌 로드’와 주변에 있는 채석장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매달 1일 오전 10시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두달치 예약을 받는데, RM의 방문 이후 오전 예약은 보통 3분 안에 마감되고, 10분 안에 한달치가 전부 마감된다.
정문에서 주차장까지 차로 1~2분.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가면 귓가엔 ‘차라락 차라락’하는 소리가 들린다. 도로에 깔린 작은 자갈들이 차바퀴에 부딪혀 내는 소리다. 미국 국립공원의 입구에도 이 같은 자갈이 깔려있다. 인지하지 못할지라도 ASMR은 이 미술관이 아스팔트가 깔려있는 우리의 일상과는 조금은 다른 곳이라는 걸 넌지시 알려준다.
에밀리 웨이 레일즈(Emily Wei Rales) 관장은 “예술적 경험에 대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의미 있는 조우를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예술 경험은 이미 입구에서부터 시작된 셈이다. 16만평 숲은 그 자체로 미술관이다.
◆기나긴 산책로 끝에서 만난 신전 같은 미술관
ASMR이 끝날 때쯤 주차장이 나타난다. 주차를 하는 곳이긴 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주차장은 아니다. 군데군데 놓인 나무와 돌이 바닥에 그려진 페인트 안내선을 대신한다(글렌스톤 미술관에서는 ‘주차숲’(Parking Groves)으로 부른다). 나무를 들이 받지 않고 돌에 긁히지 않으려면 특정한 공간에 주차할 수밖에 없는데, 주차하고 나오며 뒤를 돌아보면 안내선 없이도 반듯하게 정렬된 차량들에 웃음이 나온다.
주차장에서 미술관인 본관까지 거리는 약 500미터, 천천히 걸어서 10분 정도다. 그러나 그 누구도 서둘러 미술관으로 가지 못한다. 
광활한 목초지 사이 잘 만들어진 산책로가 먼저 관객을 맞이한다.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자리한 거대한 조형물은 제프 쿤스(Jeff Koons)의 ‘스피릿-로커’(Split-Rocker, 2000)다. 목마의 머리 부분만 있는 거대한 조형물인데 표면을 풀과 꽃으로 장식했다. 5월부터 10월까지 다양한 꽃들이 피고 지며 매일 다른 모습을 선보이기에, 미술관의 마스코트처럼 느껴진다.
시선을 반대편으로 돌리면, 낮은 구릉과 평야가 교차하는 메릴랜드의 자연이 기다리고 있다. 바람에 실려 오는 풀과 흙의 냄새가 산책의 즐거움을 일깨운다.
산책에 취해 ‘작품 관람’이라는 방문의 목적을 잊어갈 때쯤, 본관 파빌리온(전시동)이 나타난다. 낮은 구릉에 몸을 반쯤 숨긴, 직선이 똑 떨어지는 회색 건물이다. 미술관 입구부터 본관까지 30분은 족히 걸리는 시간 동안, 급한 마음과 머릿속을 채우던 바쁜 일정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예술작품은 어렵다. 현대미술은 더하다. 제대로 작품을 마주하기 위해선 준비가 필요하다. 
‘길 가에서 멀리 떨어진’ 이 미술관은 일상과의 단절을 부드럽게 제안한다. 산책으로 비워진 마음에 스며드는 건 마음에 점 하나 찍을 작품들이다.
입구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로렌스 위너(Lawrence Weiner, 1942~2021)의 장소 특정적인 작품을 만난다. 2023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개인전을 통해 한국 관객에게도 잘 알려진 그는 ‘텍스트’를 작업의 소재로 활용하는 작가다.
이곳에는 “MATTER SO SHAKEN TO ITS CORE TO LEAD TO A CHANGE IN INHERENT FORM TO THE EXTENT OF BRINGING ABOUT A CHANGE IN THE DESTINY OF THE MATERIAL. PRIMARY SECONDARY TERTIARY, 2002”라고 적었다.
직역해보면 “물질의 운명에 변화를 가져올 정도로 본질적인 형태의 변화를 초래할 정도로 핵심을 뒤흔드는 물질. 1차 2차 3차” 정도인데, 단순한 물질이 예술로 변하는 그 순간이 무엇인지 그 핵심이 무엇인지 묻는다고 해석할 수 있다.
예술은 가끔, 한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기도 하고 인간 전체의 생각 방식을 뒤흔들어 놓기도 한다. 이것이 예술이 가진 힘임을, 이 같은 작품을 이곳에서 만나보라고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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