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오름세가 심상치 않다. 연초부터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던 유가는 4개월 래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 중동 산유국들의 감산 연장과 지정학적 불안이 맞물리며 2분기 중으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95달러까지 치솟을 것이란 전망도 등장했다. 인플레이션 둔화 속도가 더딘 글로벌 각국과 우리나라의 물가와 금리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선물은 지난 1일 79.97달러를 기록했다. 장중 최고가는 80.85달러로 WTI가 80달러를 돌파한 것은 지난해 11월 이후 처음이다. 5월 인도분 북해산 브렌트유 가격은 지난달 29일 배럴 당 83.68달러로 올 들어 최고치를 기록한 후 83달러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유가 상승세는 산유국들의 연이은 자발적 감산 연장 발표 소식에 주로 영향을 받았다. 외신에 따르면 산유국 모임인 OPEC+(OPEC+러시아)는 자발적 감산을 2분기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3일(현지시간) 하루 100만 배럴 자발적 감산을 2분기까지 연장한다고 밝혔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도 하루 16만3000 배럴을 감산하기로 했고, 이라크는 하루 22만배럴, 오만도 4만2000배럴의 감산을 2분기까지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최대 원유 소비국 중 하나인 중국의 경기침체로 수요가 줄어드는 데다 OPEC+와 경쟁 관계인 미국의 산유랑 증가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OPEC+를 주도하는 중동 최대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는 대규모 토목·개발 사업 자금 마련을 위해 유가를 끌어올려야 하며, 러시아는 전쟁 비용 마련을 위해 유가를 높여야 한다. 
중동 지정학적 긴장도 유가를 압박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는 구호품을 실은 트럭에 몰려든 팔레스타인 주민 최소 104명이 숨지고 수백명이 다치는 참사가 벌어지며 불안한 정세를 이어가고 있다. 예멘의 친이란 무장세력 후티 반군의 공격으로 2일 영국 소유 벌크선 루비마르호가 침몰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감산 연장 등으로 2분기에 브렌트유가 배럴당 95달러를 돌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벨란데라 에너지 파트너스는 “OPEC+ 산유국이 감산을 연장하고 연방준비제도가 금리 인하 시점을 명확히 하면 유가 80달러 대가 눈앞에 보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제유가가 오름세를 보이면서 높아진 물가 불안에 글로벌 각국의 금리 인하가 늦춰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유가 상승은 고물가를 야기해 금리 인하 시점 지연으로 이어진다.
한은은 지난달 ‘한·미·유로 디스인플레이션 흐름 평가’ 보고서에서 “국제유가 상방리스크와 미국의 견조한 경기 및 노동시장 상황, 우리나라의 높은 농산물가격 수준과 누적된 비용압력 등이 향후 물가 둔화 흐름을 더디게 할 수 있다”면서 “물가 둔화 속도는 각국의 통화긴축 기조 전환 시점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고금리 장기화는 경기 부진 우려도 높인다. 한은은 지난달 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상반기 브렌트유 평균값을 배럴 당 82달러로 전제하면서 올해 성장률을 2.1%로 예상했다. 하지만 지정학적 불안에 유가가 오를 최악의 경우를 가정해 성장률이 2.0%까지 낮아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산유국의 감산 지속 계획도 회원국별로 증산에 나서며 불협화음을 보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지난해 OPEC 감산 합의가 사실상 무산된 경우가 많았다는 점에서다. 올해도 이란과 앙골라의 증산 전망이 산유국들의 감산정책 지속에 걸림돌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국제금융센터는 ‘OPEC의 원유생산 향방 및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국제유가는 주요국 금리인하, 세계 원유 수요 회복 기대 등으로 올해 하반기로 갈수록 오름세를 보일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나, OPEC 등 산유국의 생산 경쟁이 촉발될 경우 국제유가의 상승 폭은 제한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봤다.
심수빈 키움증권 연구원은 “(OPEC+의 추가 감산 2분기 연장은) 시장 예상에 부합하는 수준으로 이번주 유가의 추가 상승으로 연결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면서 “타이트한 수급 여건 유지를 위해 OPEC+가 산유량 조절을 이어갈 것으로 보이는 만큼, 유가 하락도 제한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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