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자꽃

이오장

시인의 밥그릇을 치운다는 소식에
명자꽃이 피었다
모과를 닮아 남자들 대화에 끼지 못한
명자
명자꽃을 좋아했던 시인은
명자를 승용차에 싣고 다녔다
잎 없이 피어난 빨간꽃은
가지 사이에 수줍음 감췄다가
볼이 통통한 열매를 맺고
울타리집 명자 시집 가던 날
장독대 뒤에 떨어졌다
명자가 그리워 뒤뜰을 서성이던 시인
뒹구는 명자 주워 들고 흘린 눈물
마른 감나무잎을 적셨는데
그렇게 시를 썼는데
다시 명자꽃이 피었는데
상에 놓일 밥그릇이 영정사진 앞에 놓였다
새봄을 알리는 붉은꽃
울타리에 불길 솟구치는 날
가버린 시인의 풋사랑 명자는 아직 모를 거다

이오장 시인
이오장 시인

이오장 시인은 한국문인협회, 국제PEN한국본부 이사로 한국현대시인협회 부이사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부천문인회 명예회장으로 활동. 제5회 전영택문학상, 제36회 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으로는 <왕릉> <고라실의 안과 밖> <천관녀의 달> <99인의 자화상> 등 18권과 동시집 <서쪽에서 해 뜬 날> <하얀 꽃바람>, 평론집 <언어의 광합성,창의적 언어>가 있다.

 

정석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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