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 쓴 글씨를 읽다

            신재미

댓잎 서걱이는 산책로 가까이 
들려오는 피리소리
나뭇가지 사이로 내밀었다 숨었다  
보름달빛에 퍼져간다
훤해지는 숲길에 부는 밤바람
홀로 맞으며 듣는 피리소리
누각에 누워 가락에 취해 눈 감는데
갑자기 들리는 꿍꽝거리는 소리
긴 머리 처녀가 뛰어들어 
정자 기둥을 치며 운다
피리가락 녹이는 애끓는 울음
한참을 허공에 흩뿌리더니
기둥 끌어안고 눈물로 쓰는 글귀
읽어 낼 수 없어 가슴으로 따라 읽는다
무슨 사연 있어 어둠을 깨울까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눈물 젖은 기둥만 바라본다
산다는 게 그럴 거라면서도
말 걸지 못하고 눈치를 살피다가
다시 피리소리 찾아보니
댓바람만 어둠을 뚫고 지나간다
 
남의 사정을 헤아리며 내면에 묻혀있는 자비심을 일깨운 작품이다. 아름다운 삶은 자신이 만들지 않는다. 꽃이 제 이름 짓지 않았듯이 다른 사람이 칭송해야 아름다워지고 영원히 남는다. 우리는 사회라는 틀을 만들어 살아간다. 자연의 보호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자연을 이겨내려는 이기심이 부른 결과다. 여기에는 단체의 도움을 받든가 아니면 보호하든가, 둘의 역할로 삶은 이뤄지며 내가 우선이지만 남을 배려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철저한 이기심을 가진 개인으로써는 희생할 수밖에 없다. 양보해야 자신도 얻을 것이 생긴다. 또한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일도 남의 행동에서 읽을 수 있다. 특히 슬픔은 쉽게 말하지 못하는 것으로 오직 자신만의 고통이다. 누가 속속들이 자기를 밝히겠는가. 하지만 이기지 못하여 눈물을 흘리고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하게 되는데 이것을 바라보는 타인은 사정을 모르므로 같은 심정일 수가 없다. 신재미 시인의 심성은 여기에서 나타난다. 조용한 공원에서 피리 소리에 심취해 있는데 갑자기 젊은 여인의 대성통곡이 들리고 기둥을 붙잡고 눈물 흘리는 장면을 목격한다. 숲을 울리는 슬픔의 행동은 듣는 이의 감정을 건드리지만 대부분 그냥 넘어가고 만다. 시인은 애끓는 울음에 함께 동조하며 산다는 게 다 그렇지 하다가도 눈시울 적시며 슬픔은 안아준다. 행마다 아름다움을 묘사하여 정경을 살리고 슬픈 사연을 부각한 작품이다. [이오장]

정석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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